2020.01.27 [얼굴이 뒤에 달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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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도 걷습니다.
그는 오늘도 그가 이미 걸어온 모든 길을 주시하며 걸어갑니다.
그의 몸은 앞을 보며 나아가지만,
그의 얼굴이 몸의 뒷쪽을 향해 달린 채로 태어났으니
그는 그렇게 밖에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바삐 그를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그 기나긴 길을 홀로 걸어갑니다.
어떤 오후.
그는 더이상 이렇게 걸을 수 없노라고 절망하며 주저앉아 버립니다.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젠 뒤만 보며 걸어가는 이 고독한 여정을 바꾸겠다 결심합니다.
가까스로 다시 일어난 그...
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얼굴을 앞으로 향하고,
거꾸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나도 남들처럼... 앞으로.. 앞으로...
얼굴은 정면을 향해있지만, 뒷걸음질치는 그의 걸음은
이내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여전히 바삐 그를 스쳐가는 사람들.
어떤 오후.
그는 다시 절망하며 주저앉습니다.
고개를 떨군 채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나요.
나는 왜 남들처럼 이 삶을 걸어갈 수가 없나요.
나는 왜 어느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나요.
나는 왜 이토록... 외로운가요...
한참이 지나...
그의 울부짖음이 잦아들고
눈물만 뚝 뚝 떨구고 있을 때
그제야 웅성웅성 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길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따로 또 같이...
제각각 제 모습대로 앉아서 호흡을 고르는 그들은
그지없이 평안해 보입니다.
여전히 그들 사이로,
여전히 그와 그들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쏜살같이 그들의 길을 지나치지만
그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든,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걸었든,
주저앉은 그의 앞에는
또다른 주저앉은...
아니, 앉아서 숨을 고르는 동행이 있었다는 걸
한참만에
이제는 그도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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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마다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릴 때 마다
숨죽여 우는데 틀어막은 입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나올 때마다
그렇게 내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는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졌던 그의 이야기는
사실은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
이미 나는 괜찮을 수 있었다는 걸
자꾸만 기억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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