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7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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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칠흑같은 어둠인 줄로만 알던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빛이 보였으며,
그 빛에 투영된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어
그는 보고 또 보고...
눈꺼풀을 깜박일 찰나의 여유도 없이
모든 것을 보려했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의 눈에 속속들이 박힌 세상의 행복은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빛났고,
묵중한듯 그러나 이내 흩날리며...
그렇게 쉽사리 날아가 버리는 듯 했다.
무언가 다른 것...
무언가 진실한...
쉬지 않고 허공을 쫓던 그의 시선이
작은 노트에 이르러 쉼을 찾은 듯 했던가..
볼 수 없던 세상이 주던 그 신랄한 감촉과
두 눈에 가득 담았던 그 뚜렷한 세상의 모습과
더이상 무엇도 보고싶어하지 않는
그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은 움직이며 이곳 저곳을 맴돌았고,
걸음을 따라 그의 몸은 이곳 저곳에 놓여졌으나
그의 손과 시선은
오직 뭉개진 연필과 닳고 낡은 노트가 전부.
늘 똑같던 그의 몸짓이 일순간
미세한 떨림을 일으키던 찰나
맥없이 늘어지던 그의 가느다란 팔.
미친듯 적어내려가던 그의 글자들이
그의 눈과... 코와... 입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작은 노트에 빼곡히 박혀있던 그의 글이
바로 그의 몸 속으로 점점.. 박혀가고 있다.
날카로운 글자의 모서리가 폐를 찌르고
잦아드는 호흡 사이로 참았던 신음이 새어나오는 순간.
생애 태초의 울음소리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울부짖는 그.
점차 더욱 거세지는 그의 울음소리에 그제서야...
그렇게 오래도록 자리하던 그의 존재를 알게된 사람들은
그 눈물을 달래고자
측은한 눈빛으로 손수건을 건넸으나
하얀 손수건을 가득 채운 건
촉촉한 눈물이 아닌
그의 눈과 코, 입으로
고통스럽게도 새어 들어가던
세상과 그의 이야기를 담은 글...
분명히 검고 깨알같은.. 선명한 글임에도
그것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다정한 위로에도 꿈쩍않는 그를 언짢아하며
다만 젖은 손수건을 햇볕에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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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버스 안에서 야구모자와 점퍼의 모자를 이중으로 단단히 눌러쓴 채 무언가 정신없이 적어 내려가던 한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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