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너의 영혼,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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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나눔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번뜩 떠오르는 여러 질문들을 통해 내게 직접 교리공부를 시켜주시는 것 같았던 시간들이 그렇게 이어졌고... 어느날 또다시 고민해보지 않았던 질문이 내 속에서 솟아올랐다.
"주님! 왜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고들 하죠? 그럼 갓 태어난 아기들은요? 그 아기들을 잃고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엄마의 심정은요? 예수를 믿는다면서 허영과 교만에 찬 저들은요? 생전 예수의 이름조차 못 들어본 어딘가의 선하디 선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욥의 고백.. 이후... 그는 나의 강건한 주권자가 되셨음으로 저 질문 또한 무례한 듯 적었지만, 그저 질문이었다. 질문하게 하신 이가 같은 분이시니 반드시 내게 답을 주시리라... 기대하면서 드렸던 질문이다. 그리고, 이번엔 이 사람 저 사람 묻지 않고... 몇 개월 동안... (거의 반 년을) 이 질문을 머금고 기다렸던 것 같다.
이스라엘의 봉사자 생활속에선 혼자만의 공간이 거의 없었다. 장애인 시설에선 룸메이트가 있었고, 주말에 봉사자 센터에 모이면 거의 스무명의 봉사자들이 방 세개 정도의 아파트에 와글와글 북적북적 함께 생활하게되니, 서른이 훌쩍 넘은... 혼자만의 시간이 잠시라도 절실한 그때의 나에겐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찬양을 크게 틀어둔 이어폰을 꽂고 걷는 긴~ 산책이 내 자신이 조금은 복구되는 시간 같았다.
또렷이 기억난다. 그때는 늦은, 또는 이른 새벽이었고... 흘러 나오던 찬양은 함부영 님의 '나의 노래'였다. 하나님이 문득 대화를 청하신 내용은 찬양의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너는 왜 십자가를 전하지 않니?" 하나님이 갑자기 물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기에 당황했지만 1초도 걸리지 않아 당당하게도 대답했다. "당연하죠. 십자가는 무겁고, 슬프고 아파요. 저는 그걸 전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다시 물으셨다. "너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눠먹고, 좋은 곳이 있으면 함께 데려가지. 하지만 왜 십자가는 전하지 않는거니?" 다시 대답했다. "십자가는 아파요. 슬퍼요. 힘들어요." 주께서 단언하시듯 말씀하셨다.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명령같았다. "너의 영혼, 기뻐하라" 그리고 그 말씀에조차 나는 토를 달았다. "그럼 기쁘게 해주세요 주님!"
"왜 '예수천국 불신지옥' 인가요? 왜 예수님이어야만 하나요?" 라는 나의 질문을 그 밤 하나님께서 바꾸셨다. "너는 왜 십자가를 전하지 않느냐. 너의 영혼 기뻐하라!" 라고... 그리고 나는 당당하고 뻣뻣하게 그리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를 기쁘게 해주세요" 라고... 숙제가... 바뀌었다...
그 해 12월 25일.
암미코 봉사자들은 목사님과 함께 베들레헴에서 성탄을 맞이했다. 이스라엘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크리스마스 시즌을 느껴보기 힘든 나라일 것이다. 온 나라가 조용하고, 트리장식 하나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베들레헴만은 좀 달랐다. 어쨌든 행사도 많고 가장 인파가 많은 '예수탄생기념교회'에서 얼마간 거리가 있는 '목자들의 들판교회'로 모두 옮겨갔다. 지금은 그나마도 작은 동굴들마다 다 개발되어 모두 기도처소로 예약이 가득차 있는 듯 하지만... 그때만해도 어두컴컴하게 비어있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어 그곳에 모두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고 들어가 한 사람씩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각자 묵상과 기도를 시작했다.
눈을 감자 정말 바로. 기다리셨다는 듯 음성이 들렸다. 아니 마음에 울렸다.
"너는 왜 모두들 기뻐하고 있는 오늘 이 순간도. 슬퍼하고 있느냐"
"당연하죠 주님. 예수님은 저희를 위해 수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려고 태어나셨잖아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어요"
"너는 왜 이틀 간의 그의 고난은 그토록 부여잡으면서, 그의 부활이 가진 영광은 기뻐하지 않느냐. 그가 네게 준 이 구원은 영원한데도."
바로 동시에 처음 봉사지였던 자폐 친구들의 그룹홈과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지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셨고, 그 모습이 꼭 나의 영혼, 바로 내 모습같다...고 생각하던 순간 하나님이 재차 명령하셨다.
"기뻐하라! 너의 영혼. 기뻐하라!"
그리고 며칠 후 1월.
새해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 생일.
이스라엘에 머무는 몇 해 동안..
(모두에게 공개되는 이 곳에 적기엔 꽤 망설여지고 고민되지만... 이곳에 남기기로 결정했다면 솔직하고 꾸밈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대로 옮긴다)
나는 이 생일이 되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베들레헴의 어느 호텔로 찾아가곤 했다.
이 날은... 이미 옛사람이 된 내 가족들에게도,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모두 너무 가슴 아픈 날이니까...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그런 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없애자는... 그런 마음이었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한다' 온 마음을 쏟아부어주시는데도, 밑빠진 항아리처럼... 내 마음이 그랬다.
이엉차 이엉차.. 가구들을 옮기고... 뭔가 땀을 흘리며 묵묵히 준비를 했다. 힘을 마구 썼더니 벌써 고단했다.
참.. 웃프게도 "아... 죽겠다. 좀만 쉬었다 죽어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푹신하고 넓다란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지나온 기억의 편린이 담긴 휴대폰의 사진첩을 하나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씩 좋아하는 찬양이 있으면 악보를 찍어 저장해두었던 습관으로 사진으로 남겨져있던 '매일 스치는 사람들' 악보를 보았다. 가사를 그렇게 자세히 살펴본 건 처음이었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 캄캄한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 받아 / 잃어버린 자들과 나누라고 하시네 / 주의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네 / 우리가 나눌 때에 그들 알겠네 /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철저히 멜로디를 제하고, 가사를 집중해서 다시 읽고 다시 읽고 하는데 순간 정확히 3년 전. 남아공의 어느 날이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당시에 나는 철저히 '하루살이'로 버티고 있었고, 이 하루를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던히도 정성과 노력을 들였으며.. 그러다보니 대부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게 되는 날이 많았다. 온갖 오지랖을 있는대로 떨고 다니다가 때론 속절없이 몸도 마음도 힘이 다 빠져 방문 앞에 '1주일간 침묵기간 중' 이라고 붙여놓으면 그땐 문자로도 '언니~~~~ '하면서 어린(?) 한국인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자꾸만 소진되면서도 손을 내미는 나를 보며 한 아이가 반쯤 냉소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언니.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자꾸 사람들을 도와? 그냥 자기만 챙겨." 사실 본인이 처음에 남아공에 왔을 때도 내 오지랖으로 여러가지 적응을 도왔는데... 내심 불편한 마음을 담아 나도 톡 한마디 했다. "나는 잃은 게 많고, 슬픈일이 너무 많아서.. 세상에 무엇으로도 그게 보상이 안되거든? 내 갈 곳이 저 위에 있어서. 나는 하늘나라에 내가 하는 일들이 올려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위로가 되고 살아져."
아! 내가 몇 달 전 주께 드렸던 질문!
나는 몇 년 전 이미 내 입술로 그 대답을 스스로 고백하던 나를 그렇게 내 눈 앞에서 보았다.
나는 '예수로 살아' 라고!
그러자.. 모든 대답이 한번에 내 속에서 얽혔던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 끊임없이 정리되어 나왔다.
믿는자와 그렇지 못한자의 가장 큰 차이는 당장 그의 행동의 선함과 그렇지 않음이 아니다. 믿음이 필요한 것은 그가 생의 절벽 앞에서,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의 나락 앞에서 끝까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 되시고, 의지할 곳 되어주시는 주가 계심 그 자체이다. 예수를 믿으면, 악한 자도 그 안에서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선한 자라도 '자기의'와 '자기의 노력' 안에서 한계에 다다른 어느날이 오면 결국 무너지고 일어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맺으신 사랑의 언약. 나를 바꾸신 하나님의 사랑. 살아도 죽은자 같았을 나를 죽지 않아도 이 생에서 부활을 살게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는 나의 주권자. 그는 모든 영혼의 주관자. 그는 오직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 만유위의 전능하신 주. 갓 태어난 아기의 영혼... 그 영혼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이를 잃은 어미의 심정. 그 절망... 그 어미가 일어나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해선... 세상은 절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위로하심만이 그를 일으킬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고백했듯. 내가 그렇게 고백하고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도... 기억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그 힘으로 지금껏 살아왔듯이... 그러니...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없다. 나는 사랑의 하나님을. 십자가를.. 복음을..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싶다! 그들을 살리고 싶다!
몇 분 전까지 죽으려고 용쓰던 내가.
나도 모자라 '누군가...들'까지 살리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나가 베들레헴을 떠나 곧바로 나를 친누나처럼 여겨주었던... 가장 가까웠던 외국인 친구를 만나 내게 있었던 일을 나누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십자가를 전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네게 바로.. 처음 나누는 것은... 지금 당장의 너를 위함이기보다는 언젠가 네게 기도가 절실할 순간이 왔을 때...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그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조금씩...
기뻐하고 싶어졌고,
기뻐하려 노력했고...
기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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