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너를 살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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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남아공살이를 시작한지 두어 주 만에 나는 그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작별 인사 아닌 마지막 인사 같은 통화를 만 하루가 되도록 드문드문 주고 받았고, 그렇게 연락이 끊겼던 아이는 이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보다 어린 아이가, 나보다 더 아팠으리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 또박또박 할 말 잘하던 아이가... 제 갈 길 잘 찾아가는 것 같던 그 아이가... 설마 하루 이틀 연락두절이었다고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시간이었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남아공에 가면서 비록 사랑하는 이를 두고, 정성스레 꾸렸던 보금자리를 싹쓰리 정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나는 썩 괜찮았다.
죽지 않아도 다시 내 삶을... 뭔가 새롭게 시작해볼 수 있겠다. 하고.
이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내게 결합된 극복하기 힘들었던 현실에서... 이것들을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는 좋은 디딤돌을 배워가자고 그렇게 굳게 다짐하고 떠나온 길이었고, 그래서 나는 심지어 내 삶에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기대..같은 단어들을 조심스레 꺼내어보곤 했던... 그런 때였다.
모두가. 정말 모두가 나의 한국행을 말렸다.
편도만 25시간 이상인 머나먼 곳. 장례식에 겨우 참석한다한들.. 어떻게 다시 돌아갈 것이냐며.. 오지말라했다.
그리고, 여기도 저기도 아닌.. 이승도 저승도 아닌.. 삶도 죽음도 아닌.. 어디쯤에서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몇 달을 그냥 살았다.
가끔 남아공 친구들이 물었다.
'넌 왜 여기왔니?'
보아하니 영어공부도 안하고, 딱히 하는 일도 없어보이니 궁금할만했다.
그럴때면 주저없이 대답해주었다.
'행복하려고'
사실이 그랬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왔고... 이젠 하루하루의 행복을 붙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당장 오늘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렇게 움직이며 살았다. 어떤 날은 기숙사 정원사의 일을 도왔고, 어떤 날은 아크릴 물감을 사다가 이불이며 가구들에 그림을 그렸고, 어떤 날은 하염없이 피아노를 쳤고, 어떤 날은 맛있는 음식을 해다가 한국인 아이들과 함께 하하호호 나눠먹었다.
성당엘 다녔지만, 가끔은 현지인 교회에도 갔다.
목사님은 내외분은 예의있고 따뜻한 분이셨고, 모든 인종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를 환대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그 교회의 반주자였던 분이 피아노를 치시면... '와.. 예수님이 바로 여기 앉아계시는 거 같아' 라고 그에게 말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는 악보도, 코드도 아무것도 읽을 줄 모르는... 그냥 멜로디 하나면 음악이 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러 교회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늘 뒷통수에 매달려있던 해결되지 않던 질문이 있었다.
'하나님. 왜 저를 이 곳에 데려오셨나요?!'
여기서 새롭게 잘 살아보라고 데려오신 줄 알았는데...
남아공에 오기 몇 달 전... 소록도에 갔다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바뀌면 평안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닫곤..
그 평안을 살게 해주시라 열심히 기도드렸고... 그 기도의 마지막 날... 공교롭게도 비행기에 몸을 실었기에
이제 이 땅에서 나는 평안을 사는 삶을 시작해주시리라 생각했는데...
풀리지 않는 이 질문이 내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그 해 10월.
여느 주일처럼. 교회에 앉아있었다.
설교는 영어였고 한국어였어도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었으면 들리지 않았을 그런 상태로 그냥 앉아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너무 짧았지만. 또렷이 기억한다.
그 찰나를... 나열하자면 이렇다.
무언가 머리를 꽝 때리는 것 같았고, 그때도 나는 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님 왜 저를 이 곳에 데려오셨나요' 허공에 울리던 내 질문에 대답이 들렸다. "너를 살리려고!" 그리고 내 평생의 기도를 떠올리게 하셨다. '주님 제가 천애고아라도 좋으니 제가 그저 제 슬픔만 저의 아픔만 어깨에 짊어지면 안될까요. 가족이...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든 너를 빨리 꺼내와야했다.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나의 이마위에 새겨지듯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박혔고 이 모든 일이 그냥 사람의 시간으로는 카운트 할 수 없는 찰나의 일이어서 마치 아무 일 없는데 그냥 멀쩡하던 사람이 통곡을 시작하듯 그렇게 몸이 흔들리도록 울었다. 예배가 끝나도록 일어나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내게 현지인 친구들이 와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Yes Jinhee.. Jesus loves you." 출렁이는 내 몸을 꼬옥 안아 지탱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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