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2014.03.11 [창세기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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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배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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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

 

여든이 넘도록 후사가 없자 아브람에게 그녀의 하녀, 하갈과 함께할 것을 권유한 사래. 막상 수태한 후 자기 여주인인 사래를 멸시하던 하갈. 사래는 아브람을 찾아가 이 사실을 하소연했고.. 아브람은 '당신의 하녀는 당신의 손 안에 있으니 당신이 기뻐하는 대로 그녀에게 행하라(16:5)' 합니다. 이에 사래가 그녀를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를 피해 광야로 도망갑니다.

 

16장의 이런저런 스토리를 묵상하는데

문득... 사람이 가진 '정의'와 하나님의 '공의'가 구별됩니다.

 

사래의 입장에서 수태를 하고 자신을 멸시하던 막되먹은 하녀 '하갈'은 응징의 대상입니다. 하갈의 입장에서 여든이 넘도록 후사가 없던 아브람의 집안에 귀한 생명을 잉태한 그녀는 참 귀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녀를 학대하는 여주인의 처사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사래와 하갈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를 그들에게 맡겨두는 것.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옳은 처사'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람은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잉태된 생명을 떠나보내야 했고, 사래는 기왕 마음을 먹고 공을 들였던 일에 오히려 마음만 다쳤고, 하갈은 수태한 몸으로 광야로 내쫓겼습니다.

 

이때...

주의 천사가 광야에서 도망중인 하갈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 그녀의 손 밑에서 복종하라, 하고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여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하십니다. (16:9-10)

 

하갈은 위로받고, 기뻐하며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 칭송하며 명하신 대로 돌아가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딱히 새로운 대안은 없었습니다.

 

하갈은 자신의 주인이었던 사래에게 복종하기로 결심했고, 그 마음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느니라(16:11)' 라는 말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아브람도, 사래도, 하갈도... 평화로워 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을 위해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한 사람만을 위해 휘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렇게 마침내 이루실 일들을 그 분의 계획대로 평화로 거두십니다.

 

내 생각에...

나는 제법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눈엔...

세상엔 억울한 일들이 참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르고 옳은 일이라고만

싸워야 한다고만

맞서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기도는... 웬지 무기력해보였습니다.

기도는... 웬지 변명같았습니다.

기도는... 너무 더뎠습니다.

 

이제 조금씩 그게 아니었다는 걸

크고 강한 일들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데도

여전히 했던 방법대로

옛 자아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나의 정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주님..

저는 죽고,

당신만이 가득하소서.

 

오늘도.. 지금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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